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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나는 감히 모든 사랑에게 네 이름을 주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널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든 너를 본 후였다. 언제는 해사하게 웃는 너를 보고서 그런 생각을 했다. 또, 속상함에 눈물을 참는 너를 보다가, 나는 사랑의 기시감 같은 걸 느꼈다.
셀 수 없이 사랑을 떠올리면서, 나는 친구라는 말을 힘주어 말하는 네가 조금 미워졌다. 나의 사소함을 까먹는 너에게, 연애하는 중이냐고 물으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지 묻지 않는 네가 서운했다. 딱 너답게 아팠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답게 마음이 쓰라렸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내 사랑에 너의 이름을 붙였다. 친구 같은 우스운 단어로 사랑을 숨겨야 할 때와는 다르다. 은광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너의 이름을 주겠다. 그치만 약간의 투정으로 이민혁, 나의 이름은 오직 네 사랑에만 붙기를 바란다. 무엇에게도 네 사랑을 뺏길 순 없으니까.
사랑은 멋모르는 불장난 같아. 불탈 땐 그냥 재밌거든. 더 태워보고 싶고. 불을 더 키워보고 싶고. 그러다 지쳐. 사그라드는 것도 사실 몰라. 여전히 뜨거우니까. 그러고 나서 다 타버리면 갑자기 추워지잖아. 그걸 견디지 못하면 다른 불을 찾는 거야.
새로 불을 켤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것도 잘 안될 때가 있어. 나는 이 불이 좋은데. 근데 그럴거면 그 불을 오래 태울 수 있도록 꾸준히 땔감도 넣어주고 해야하잖아. 근데 그때는 그 생각을 못하지. 그냥 지금 이 뜨거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둬도 괜찮지 않을까 하다가잿더미만 남은 걸 보고 허탈해하는 거야. 근데 그 속에서 불씨를 또 찾으면 다행이야. 그 불씨로 다른 불을 붙여보거나 어? 땔감을 마구 넣어서 불을 다시 키워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근데 내 불은... 부싯돌 하나가 없어졌네. 그게 제일 중요한데. 부싯돌이 없어졌어.. 어딨냐고?
그 사람이 갖고 있어. 내가 줬거든. 하나 가지라고. 우리는 어차피 계속 붙어있을 거니까 둘이서 같이 붙이면 된다고. 근데 불이 꺼지니까 그 사람도 사라졌네. 다 없어졌어. 내 부싯돌, 내 사람. 그 사람이 내게 돌을 돌려주려고 했거든. 근데 나 내 부싯돌 돌려받아도 불 못 붙일 것 같은데, 이제.
나 다음 생애는 너로 태어나 너를 사랑해야지. 네가 내게 준 사랑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 네게 안겨줘야지. 나만을 사랑해 너조차 사랑하지 않은 너를 위해, 그런 널 사랑한 나를 위해. 네가 못다본 푸른 하늘 가득 담고 태어나 네게 보여줘야지.
겨울에 태어난 네가 그리도 치를 떨었던 찬 겨울눈의 포근함을 뭉쳐 손에 쥐고, 나 다음 생에 네게 쥐여줘야지. 네 태어남으로 내 겨울은 그 무엇보다 따스했다고 알려줘야지. 나 다음 생에 너로 태어나, 문득 너란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아 눈물 흘려야지. 꼭 그리 해야지.
언젠가 네가 내려다봤을 컴컴한 발치 따위 찾지 않아야지. 눈부신 여름 햇살과 장마와 그 계절의 습도 하나까지 네게 선물해야지. 너무도 짧았던 네 생이 고단치 않도록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네게.
혹 그럴 수 없다면 나 다음 생에는 이 세상으로 태어나 널 사랑해야지. 네가 밟고 설 땅과, 네가 올려다볼 하늘 되어 널 사랑해야지. 누구보다도 널 아껴줘야지. 너 다음 생에 날 모른대도, 나 다음 생에 널 둘러싼 모든 것이 되어 널 사랑해야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우리의 인연이,
결국 끝을 보고야 말았던 그 계절, 너와 함께했던 장소에서,
나는 너를 그리며 해답을 찾고 있어.
나에겐 그저 찬란한 햇살과 같았던 너를
그렇게 보냈어야 했을까. 그렇게 우린 끝나야 했을까.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불러본다.
햇살보다 더 밝은 빛을 머금은 네 이름을.
너도 듣지 못할 테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내 마음속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우린 정말 사랑했던 걸까
우린 정말 행복했던 걸까
같은 계절에 태어난 우리의 마지막은,
그 계절을 닮아 쓸쓸하고 공허했었지.
여전히 난 그 모습을 잊지 못해.
너도 나와 같을까. 나와 같이 답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형 좋아하는 거 그만하고 싶어.”
근데 그게 잘 안 되니까. 테이블에 머리를 쿵 박은 넓은 어깨가 떨렸다. 잘난 네가 어쩌다 날 좋아하게 됐을까. 나무 바닥 위로 시선이 떨어졌다. 술 한 모금 안 댄 혀끝에 쓴맛이 돌았다.
“...성재야.”
“...”
“그래, 나 그만 좋아해.”
유난히도 덥던 여름 끝의 여운도 느낄 틈 없이 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하늘이 높아졌나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높이에 잔잔하게 떠다니는 구름이나 여전히 초록색을 띈 나뭇잎들만 시야에 들어찰 뿐이다. 아침부터 꽤 서늘하여 걸치고 나온 후드의 자크를 주욱 올려 잠궜다.
“으, 추워. 으.. 졸려...”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민망함에 후드까지 뒤집어쓴 창섭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주머니가 작아 우겨 넣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테지만.
“어?”
종이다! 영수증 조각일까, 현금일까.
기대감으로 잡힌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대왕님의 얼굴과 꼬깃한 종이쪽지였다. 일단 대왕님의 용안을 뵈었으니, 오늘 운세는 뒤집어지게 좋을 것이다. 흡족하게 웃은 그가 쪽지를 펴본다.
「창섭아. 올 때 붕어빵 3천원 어치만 꼭 사다 줘.」
익숙한 글씨체. 은광임이 틀림없다. 이 후드를 작년 겨울쯤에 입고 안 입었으니, 그때 넣어둔 것이 틀림없다. 너무 늦게, 그러나 너무 이르게 본 그 쪽지 덕에 잠시간 고민에 빠진 창섭은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
강의실에 앉아 음악을 듣던 은광은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붕어싸만코를 든 창섭이 히죽이며 웃고 있었다.
“아직은 여름인 것 같아서, 얼려왔어. 응가.”
전례없는 이상반응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센티넬과 가이드의 상성이 틀어지게 되는건. 몇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연구원들은, 결국 급하게 우리를 떨어트려 놓으려했다.
당연히 난 동의할 수 없었다. 네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효력이 약해진만큼 자주 가이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몇 번씩이나 폭주를 동반한 고비가 찾아왔다. 진정제를 맞고 깨어난 다음 날이면, 혼자 깊은 땅굴을 파고 있을 너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난 괜찮아.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아냐 괜찮아. 서로에게 사과하고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것의 반복. 그럴수록 점점 지쳐가는 네가 눈에 밟혔다.
언제부터인지 네 눈에 자리잡은 눈빛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기관은 그랬던 우리에게, 나보다 여린 너에게 선택지 없는 결정을 맡겼을 것이다.
네가 떠나기 며칠 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네 목소리가 떨렸던가.
- 민혁아, 넌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어?
- 응? 당연하지. 너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답하지 말걸 그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스스로를 향한 물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너를 보낸지도 3년이 지났다.
잘 지내고 있니. 너무 오랜만이라 갑작스러울까? 어쩌면 넌 이 편지를 읽어보기도 전에 찢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만약 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한 번 읽어봐 줄래.
오늘 길에서 언젠가 너와 봤던 영화의 속편이 나왔는지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영화관으로 향했어. 그리고 영화를 보는데, 전편의 장면들이 스쳐가면서 아, 이게 이렇게 이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우리가 어땠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라.
그때의 넌 어땠지? 나는? 도대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있었지?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침대에 누워있는데, 책장 뒤로 뭔가 보이는 거야. 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을까 싶은 그걸 끄집어내보니 언젠가 너와 찍었던 사진이더라고. 거울 속의 내 모습보다 훨씬 앳된 모습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너와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그 영화관에서 우린 어땠을까.
왜 기억나지 않았을까. 너와 내가 했던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스쳐가는 사랑이라 그랬을까.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그제서야 떠오른 거야. 그게 아니었구나.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겨진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구나.
그런 사랑을 한 우리는 참, 예뻤구나.
폐허가 된 도시 속, 나는 너를 찾아 헤매었다. 차디찬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너를 들쳐업고 제발 숨이 붙어있기를 바라며 우리 둘이 살던 집으로 뛰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너를 보낼 수는 없었다.
입술이 파래지고 눈 밑이 거뭇해지는 은광이를 바라보며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때 네 옆에 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했음에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능력이 치유였다면 너를 살릴 수 있었을까.
아직 괜찮은 것 같다. 조금만 더 버티면 치료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비해 평화로운 일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곤히 자고 있는 너를 바라보며 옛날 생각이 나 부슬부슬 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
사람을 좋아했던 너에게 마지막으로 돌아온 것은 총구였다.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능력을 사용하려 한다.
아프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 우리
사랑해
이 또한 사랑이라면, 세상에 사랑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가 더 이상 손 쓸 수 없이 틀어져 애써 지켜온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까봐 너를 욕심내지 못했다. 욕심 없는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나는 영락없이 버려진 개새끼라, 목줄이 채워진 채 주변만 무한히 배회하는 중이다. 딱 네가 나를 찾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에서, 딱 내가 너를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만 원을 그리며 맴돌기만 한다. 그러다 선 앞에 서면 혹시나 밟을까 부러 뒷걸음을 친다.
내게 웃어주고 섭아, 하고 불러주면 온 몸의 움직임이 멎는다. 사실 나는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울고 싶었다. 나를 봐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는 내가 싫어서, 웃고 있는 네가 사랑스러워서. 낡아빠진 목줄이 헐거워져도 병신같이 뜯어낼 줄을 몰랐다. 너는 어째서 아직도 나에게 군림하는가.
고백을 건네었던 날, 답을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옅게 웃는 너머로 비치는 미안함으로 나는 미리 네 답을 본 것 같았다. 그래도 모르는 척 했다. 기다려 달라는 말의 대답은 아직 유효하다.
나 기다리는 거 잘해, 응가.
근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짖어보려 해. 이 또한 사랑이라면.